엄태정 작가, 세계를 구현한 조각세계

불교의 요란한 미술품으로 유명한 중국 둔황의 ‘막고굴’은 4세기부터 14세기까지 1000년 동안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귀중한 유적입니다. 이 거대한 자연암석에는 수백 개의 ‘동굴 골방’이 있으며, 각각의 골방은 하나의 소우주를 이룹니다. 이러한 독특한 공간은 예술가 엄태정의 창조적인 영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엄태정 작가는 최근에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인전 ‘세계는 세계화한다(World Worlds)’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전시에서 그는 27점의 작품을 선보였으며, 그의 작품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아우라를 품고 있습니다. 그는 “조각은 하나의 세계를 그 장소에 건립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의 작품은 깊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막고굴 시리즈’는 현실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현실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그의 예술세계를 응축시킵니다. 그의 동굴들은 지상에 구현된 불교식 정토를 나타내며, 관람자들은 동굴의 안과 밖에서 다양한 경험을 합니다.

놀랍게도 엄태정 작가는 불교의 정서가 도사리고 있는 작품들을 만들었지만, 그는 크리스천입니다. 그는 조각 앞에서 신심을 종횡하며 예술 내에서 합일을 이루는 숭고한 진리를 향합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낯선자의 은신처’ 시리즈는 엄 작가가 간파한 하이데거식 사유가 짙게 느껴집니다. 스테인리스 패널로 만들어진 이 금속 조각은 그 자체로 관객을 만나며 낯선 존재, 이방인이 됩니다.

엄태정 작가는 1960년대부터 60년 넘게 철, 구리, 스테인레스 등을 사용하는 조형예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아라리오뮤지움 등에서 소장되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법과 정의의 상’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뜰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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